부처님께 귀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부대중이 다함께하는 제12교구 해인사 말사. 진주 월아산 청곡사

역사

이성계의 왕비 신덕왕후의 고향이 청곡사 아래 마을이라는 것은 1397년 정축년 청곡사 보광전에 상총스님을 시켜 향로를 주조하게 했다는 은입사 향로에 쓰여있다.

고려말 1380년 이태조(이성계)가 전라도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있는 동안 왜구들이 서해와 남해에 침입하여 노략질과 살상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민패를 심하게 끼쳤다. 왜구들은 지리산자락 함양, 산청, 남원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충두란 장군 외 세 장수 중 특히 십팔세 밖에 안되는 '아지발도’ 왜구장수와 접전하게 되었다.


아지발도 장수는 몸 전체가 비늘로 감싸고 있어 칼도 창도 화살도 소용이 없자 이성계는 무학 대사를 초빙하여 아지발도를 죽이는 방법을 묻자, 이에 무학 대사는 아지발도 장군은 투구를 화살로 쏘아 입이 열리도록 맞춘 후 입이 열리는 순간 이성계 장군이 화살을 입속으로 쏘아야만 죽일 수 있다고 알려주어 아지발도를 그렇게 죽이게 되었다.
그런 왜구 잔당과 싸우는데 하루해가 모자라 달밤에 전쟁을 해야 하는데 토벌의 순간이 많이 남지 않음을 안 이성계 장군은 넘어가는 달을 끌어올려 달라고 무학 대사에게 청하자 무학 대사는 달을 끌어올렸다하여 끌어올린 “달”자를 쓰고있는 인월 마을(지리산 실상사 입구)까지 왜구들을 유인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그 유명한 이성계 장군의 황산벌대첩비에 기록되어 있다.
왜구들을 정벌한 이성계 장군 일행과 무학 대사는 도선 국사께서 창건한 청곡사를 참배하기 위해 함양 산청을 거쳐 청곡사에 다 달아 먼 길을 온목마른 말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머물던 장소가 지금의 청곡사 아랫마을 갈전리다. 그때 물 먹이던 우물이 지금도 있다.
갈전리의 어원은 갈마정(목마를 ‘갈’, 말 ‘마’, 우물 ‘정’)인데 수백년이 지나는 동안 글자도 빠지고 음도 변해서 말 '마’자는 빠지고, 우물 '정’자는 밭 '전'자로 변하여 ‘갈전리’라 변했다.
이때 이성계 장군도 목이 말라 미모의 여인이 우물가에 있어 물을 달라고 청하니 버들 한잎을 넣어 주자 이성계 장군은 화를 내면서 그 물을 확 버리고 다시 달라고 하자 이 여인이 다시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다시 나무 한 잎을 넣고 주자 이성계가 묻기를 “왜 물에 나뭇잎을 넣는가”하고 묻자 이 여인 왈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까 하여 나뭇잎을 불어 천천히 마시라고 나뭇잎을 넣습니다.” 라고 하자 이성계장군은 참으로 지혜와 미모를 겸비했으메 반하여 훗날 왕비로 삼으니 그분이 바로 신덕왕후이다.
신덕왕후는 그 후 고향인 마을 청곡사를 대대적인 불사를 함과 동시에 대웅전 불상 후불탱화, 업경전 지장보살, 시왕 등 국보급 성상을 신심으로 조성 했다. 이 같은 사실은 6백년 동안 몰랐다가 은입사 향로를 발견하고 밝히게 되어 청곡사의 역사를 찾게 된 것이 참으로 기쁘다.
청곡사 아래 '학영지'란 못이 있는데, 신덕왕후가 어릴때 달밤이면 연못에 와서 맑고 깨끗한 물을 거울삼아 비춰보기를 즐겨하였는데, 자기 미모를 고고한 학으로 비유하고 자기 얼굴을 학의 그림자처럼 비추었다고 해서 학영지라고 했으며, 달빛이 산을 타고 올라왔다 하여 달 올음산(달음산)이며, 달빛에 학이 내려와서 환학루와 방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