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귀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부대중이 다함께하는 제12교구 해인사 말사. 진주 월아산 청곡사

청곡사 문화 산책

국보 괘불 앞에서 '야단법석'... 무슨 일일까/ 오마이뉴스

청곡사 | 2018.06.20 09:47

천년 전설이 깃든 경남 진주 청곡사


지난 13일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이른 점심을 먹고 청곡사로 나섰다. 경남 진주시 금산면에서 문산읍으로 가는 길에서 다시 3분 정도 차로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물론 문산(동진주)나들목에서도 5분여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절을 찾아가는 길은 아담한 숲길이다. 월아산이 청곡사(靑谷寺)를 품에 안고 있기에 산림욕 하듯 절을 찾을 수 있다.

달빛이 산을 타고 왔다 해서 달오름산(달음산) 또는 달엄산이라 불리는 월아산은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와 진성면 중촌리·하촌리 경계에 솟아 있다. 시내에서 가까워 진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월아산은 해발 482m라 반나절이면 산 정상에 다녀올 수 있다. 청곡사에서 산 정상까지는 1시간 반이면 땀 흠뻑 내고 오를 수 있다.


월아산은 해돋이가 그만이다. 월아산 정상에서 보는 해돋이가 아니라 근처 금호 저수지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는 진주 8경 중 하나다. 해돋이만 그럴까. 여자의 가슴처럼 봉긋한 월아산 두 봉우리 사이로 떠오르는 보름달 풍경은 일출과 또 다른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월아산의 정상은 '장군대'라고 하는데 예부터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는 김덕령 장군이 목책으로 성을 쌓고 왜적을 무찌른 곳이다. 월아산 서쪽에 청곡사가 있고 동쪽에 천룡사, 남쪽에 두방사가 있다.




주차장에서 200~300m의 경사진 거리를 올라가면 만나는 일주문. 일주문에서 바로 절로 가는 걸음을 붙잡는 풍경이 있다. 경북 청송의 주산지를 닮은 세월을 켜켜이 견디어온 소나무가 물에 반쯤 담근 모습으로 반긴다. '학영지'라는 연못이다. 이 연못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둘째 왕비인 신덕왕후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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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사 아랫마을에 살았다는 신덕왕후는 어릴 적 달 밝은 밤이면 거울 보듯 이 연못에 자신을 비춰보기를 즐겼다고. 아름다운 자신의 미모를 고고한 학으로 비유한 훗날의 왕후는 학의 그림자처럼 비췄다고 학영지라고 불렀단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는 여왕은 저리 가라다. 아무튼 붉고 노란 색의 가을빛이 연못에 비쳐 잠시 쉬어가게 한다.

일주문 들어서자 왼편으로 부도(浮屠·浮圖가 보이고 청곡사가 드디어 숲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일주문에서 100여m 걸어가자 다리가 나온다. 방학교(訪鶴橋)다. 신라 헌강왕 5년(872년) 도선국사가 진주 남강에서 푸른 학이 이곳 월아산 기슭으로 날아와 앉자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한 산과 계곡이 있어 이곳이 천하의 명당이라 절터를 세웠다고 한다.

천왕문으로 가는 길은 '못 먹어도 고(GO)'를 할 수 없다. 직진이 아니라 구불구불 돌아가야 한다. 한 번에 올라가지 못하게 한 연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급할 것도 없는 걸음 쉬엄쉬엄 풍경 구경하며 올라가면 그만이다. 문득 돌아가면서 신덕왕후의 어릴 적 전설과 함께 왕후가 이성계를 만난 전설이 떠올랐다.

고려 말 남해안 왜구를 토벌하고 청곡사를 찾은 이성계. 목이 마른 이성계는 청곡사 아랫마을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물을 청했더니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어 물 담아 주더란다. 급하게 먹다 보면 체할 것을 염려한 여인의 지혜와 마음씨에 이성계는 아내로 맞았는데 그가 신덕왕후다. 천왕문으로 돌아 올라가면서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들으니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 떠난 기분이다.




청곡사는 9872년 창건된 후 고려 우왕 6년(1380년) 중수했다가 조선 태조 6년(1397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고 풍수지리에 따른 비보사찰(裨補寺刹)로 고쳐 지어졌다. 동북아국제전쟁 때 불타 없어져 선조 35년(1602년) 다시 지어졌다. 광해군 5년(1612년) 보물 1232호인 제석천왕과 대범천왕을 새로 조성했다. 경종 2년(1722년)에는 국보 302호인 괘불탱화가 조성되고 조선말에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으나 6·25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2000년 다시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는 참으로 오랜 역사만큼 아픔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절 내 많은 유물이 도둑을 맞기도 했다. 다만 대웅전은 광해군 4년((1611년) 이후 한 번도 해체, 복원된 적이 없는 오래된 목조 건물로 경남 유형문화재 51호로 지정되었다.

천왕문을 지나니 대웅전 앞 환학루. 학이 항상 날아와 앉든 자리로 지금은 법문을 들으며 신도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누각이다. 그 옆으로 범종각이다. 법고(북), 범종, 목어, 운판이 있다. 목어는 용의 머리와 고기 몸통을 한 이색적인 모습이다. 범종각 옆으로 불교문화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지하 3층까지 내려가야 그 모습을 다 드러내는 불화가 있다. 길이 10.4m, 폭 6.4m가 주는 위엄과 자비로움에 절로 고개 숙이고 손을 합장하게 한다. 국보 302호인 영산회괘불탱화다.

이 괘불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6년간 고행수도 끝에 대각을 성취하신 이후로 아함경 12년, 방등경을 8년, 반야경 21년, 법화경, 열반경 8년을 설법을 하였는데 49년간의 설법 중에서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법화경을 영취산에서 설법 하신 것을 묘사한 것이다. 조선 후기 대표 불화승려인 의겸이 10명의 화승과 함께 그렸다. 괘불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6m 크기의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옆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 있고, 뒤로 여러 보살과 제자들이 함께한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구는 것을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괘불을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법회를 한다. 이때의 법단이 '야단'(野壇)인데 그림 무게만 114kg인 초대형 괘불이 걸리는 날이면 정말 청곡사는 송곳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으니 정말 '야단법석'이란 말뜻을 새삼 느끼게 한다.

대웅전 뒤로 삼신할매각 가는 길이라는 안내 화살표를 따라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올랐다. 무려 34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이건 '꽃보다 할배'는 물론이고, 짐꾼 탤런트 이서진씨가 와도 힘겨울 듯하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입이 절로 열리며 헉헉 내뺐다. 올라와 바라보는 절 앞 장군봉의 풍광과 늦가을 햇살이 드리운 나뭇잎의 반짝이는 모습은 그 수고로움을 잊게 한다.

'꽃보다 할매'는 좋겠다. 할매 드시라고 과자 한 봉지 올려놓았다. 공양미 옆에 있는 과자 한 봉지. 보는 순간 기분이 짠하다. 덕분에 곁에 있는 호랑이가 고양이로 보인다. 지리산이 여자 산신이고 이 산 아래에서 왕비와 고관대작의 부인과 딸이 태어난다는 풍수지리 덕분에 할매 산신과 할아버지 산신을 함께 모신 유일한 산신각이라고 한다.
청곡사, 산림욕 하듯 즐겁게 오솔길을 걷고 천 년의 전설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묻어났다. 오래된 전설 속에 꽃보다 할매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 돌아 나오는 숲 속의 햇살은 눈부시고 따뜻했다.


오마이시민기자 김종신/ 20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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