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귀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부대중이 다함께하는 제12교구 해인사 말사. 진주 월아산 청곡사

청곡사 문화 산책

퇴계 이황과 청곡사 인연

청곡사 | 2018.06.20 14:38

  儒林(342)-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할반지통(割半之痛).

 

몸의 절반을 베어 내는 아픔이란 뜻으로 형제자매가 죽었을 때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이미 퇴계는 8살 때 형이 칼에 손을 베어서 붉은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 것을 보자 형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들여서 슬피 울던 우애 깊은 소년이었다.  

연보에 의하면 퇴계는 6살 때 이미 학자의 법도를 갖추어 매일 아침 자기 혼자서 머리를 빗질하고 몸을 단정히 갖추곤 하였다고 한다. 손윗사람에게는 태도가 공손하였고, 누구에게든 늘 공경하는 태도로 대하였다. 한밤중에 깊이 잠을 자다가도 윗사람이 부르면 즉각 응대할 만큼 조심성이 몸에 깊이 배어 있었다.

 

 

특히 형 해는 퇴계와 더불어 집안을 빛낼 아이로 일찍부터 촉망받고 있었다. 퇴계와 해는 아버지의 동생이었던 송재공(松齋公)으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배웠다. 퇴계의 골상에 관해서는 이마가 넓어서 송재공은 퇴계를 이마가 넓은 아이라 하여 광상()’이라 불렀는데, 성품이 엄격한 송재공은 어린 퇴계를 가리켜 광상이야말로 반드시 우리 가문을 지키고 빛낼 아이이다.’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퇴계의 넷째 형인 해도 영민하고 똑똑한 것을 꿰뚫어 보고는 항상 형님께서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이 두 아들을 두셨으므로 결코 세상을 떠나신 것은 아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이였으니 두 사람은 금과 같은 형제이자 옥 같은 벗이었으며, 학문으로는 동문수학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남편이 죽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라 하여서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하였고, 아내가 죽었을 때는 고분지통(鼓盆之痛)’이라 하였는데, 이는 아내가 죽었을 때 물동이를 두드리며 한탄하였던 장자(莊子)의 고사에서 나온 용어였다. 또한 아들이 죽었을 때는 상명지통(喪明之痛)’, 형제가 사망하였을 때는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 하였다. 바로 이렇게 각별한 관계였던 형 해가 억울하게 죽자 퇴계는 자신의 몸을 절반이나 베어 내는 할반의 고통으로 받아들여 생각할 때마다 흐느껴 울며 통곡하였던 것이다.

 

퇴계가 진정한 스승이었던 송재공에게 글을 처음으로 배웠던 것은 12. 그 전까지는 이웃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웠다고 연보는 기록하고 있다.  

퇴계가 학문에 입문한 것은 6살 무렵. 그때는 송재공이 벼슬살이 중이었으므로 집안에서는 천자문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 부득이 이웃 서당에 글을 배우러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 무렵 송재공은 진주 목사로 있었는데, 셋째 형 의와 넷째 형 해는 각각 13,11살로 송재공을 따라 진주 월아산(月牙山) 청곡사(靑谷寺)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퇴계는 6살이었으므로 형들을 따라가지 못하였고 이웃 노인으로부터 글을 배웠는데, 훈장은 어린 퇴계를 무척 신망하였다고 한다.

 

숙부 송재공 이우(李隅)는 안동부사, 강원감사, 승지 등을 지내고 병이 들어 마침내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몸을 조리하고 있었는데, 이때 퇴계는 송재공의 아들인 사촌동생 수령()과 해 셋이서 처음으로 논어를 배우게 되었다.  

이로써 퇴계는 학문의 지혜를 열어 준 참 스승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서울신문/ 2005-05-11 



32(1532)의 겨울에 곤양군수 관포어득강의 초청을 받아 이듬해 봄에 남행을 시작해 4浣沙溪(완사 금성)에서 마무리하며 109수의 기행시를 남긴다. 326일에 월아산 남쪽 기슭 법륜사에서 강공(姜公) 등과 함께 지내고 금호지 둑을 거닐며 촉석루에도 올랐다.

26년 전에 숙부가 진주부사로 부임하자 큰형과 둘째형은 따라와 글공부를 했던 청곡사를 찾아 시를 읊는다. 3년 전 셋째형 이해는 양재벽서사건에 연루돼 유배를 가다 죽는 등 퇴계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琴山道上晩逢雨 금산도상만봉우


靑谷寺前寒瀉泉 청곡사전한사천


謂是雪泥鴻瓜處 위시설니홍과처


存亡離合一潸然 존망리합일산연


 금산 가는 길에서 비를 만났는데 청곡사 앞 샘에서는 차가운 물 솟네,

 ! 이게 바로 (소동파가 말한)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자리이러니

 존망과 이합이(삶과 죽음이 ) 하나 되어 흐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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