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귀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부대중이 다함께하는 제12교구 해인사 말사. 진주 월아산 청곡사

성보 박물관

문화재

청곡사 대웅전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1호



경남 진주시 금산면(琴山面) 갈전리(葛田里)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광해년간에 복원한 것으로 대웅전은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신라(新羅) 49대 헌강왕(憲康王) 5년(879)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創建)한 것으로 사찰(寺刹)을 창건하게 된 동기는 문헌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진주를 지나가시다 남강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瑞氣)가 충만함을 보고 이곳을 살펴본즉 천하에 명당이라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이 절터의 특징은 두 줄기의 물길이 한곳에서 만나 못을 이룬 위에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터라 학이 알을 부화한 뒤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학 목을 고리로 채워놓는다는 뜻에서 탑에 원형 고리와 원주를 새워놓았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 깨어지고 나머지 형태만 갖추고 있으며 탑 정면은 앞산 노적 봉우리에 맞추어 먹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탑을 새운 것이 특징이라 많은 풍수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실습 살찰터로 자주 찾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학이 찾아와 먹이를 먹는 계곡에 징검다리가 있어 이곳에서 학을 날려 보냇다 하여 방학교가 있고 학이 목욕을 했다하여 학영지가 있다.
그후 고려말(高麗末) 우왕때 실상사 장로(實相寺長老) 상총대사(尙聰大師)가 중건(重建) 하였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불탄 것을 선조, 광해년간에 복원(復元)한 것으로 대웅전은 경남(慶南)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건물의 형식은 단층 팔작지붕와가(瓦家)로서 다포계(多包系) 계통(系統)을 따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활주(活柱)를 받쳐 보강하고 있다. 청곡사 대웅전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 51호로 임진왜란때 불탄것을 조선시대 실상스님과 보우스님등이 보수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대웅전은 처마선이 매우길어 처마를 바처든 보조기둥이 돗보이며 대웅전 전면은 화려하나 뒷면은 매우 간결하고 수수하게 지어졌다. 내부의 석가모니 부처님과 문수 보현보살님의 등상은 미우 단아하며 섬세하고 그윽한 모습이 경외감을 갖게하고 근래에 보기드믄 미소를 지니고 있다, 건물 내부의 장식은 불보살님이 돗보이도록 아주 검소하게 지어졌으며 내부 그림은 아주 아름답고 섬세하게 단청된게 특징이다.
청곡사에는 15동의 건물이 있으며 국보 302호 괘불탱화, 보물1232호 제석천왕, 대범천왕이 있으며 3층석탑, 대웅전, 업경전, 괘불함, 금강역사상, 영상회상탱화등 많은 성보가 있다.

청곡사 업경전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9호



업경전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다시 세웠다. 업경전은 청곡사를 세울 당시 대웅전 옆에 부속 건물로 지었는데 조선말 포우대사가 보수하였다.
명부전·지장전이라고 불리우는 업경전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린 우물천장이고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10명의 명부왕을 모시고 있다.

청곡사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중기단 위에 탑신부(塔身部)를 구성한 높이 2.5m의 일반형 삼층석탑이다. 기단부나 탑신부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는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이 각 1매석(一枚石)으로 조성되었고, 노반석(露盤石)과 상륜부재(相輪部材)들도 별석(別石)으로 이루어졌다.
석재(石材)의 풍화가 심한 편이며, 상층기단의 면석(面石)에는 양 우주(隅柱)와 중앙에 탱주가 새겨져 있으며 상면의 갑석(甲石) 일부는 파손되었다. 옥개석의 받침은 4단으로 마련되어 있다.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주(寶珠) 등의 상륜부를 완전히 갖추었으나 현재는 그 일부만 남아 있다.
석탑은 청곡사 대웅전(大雄殿:경남유형문화재 51) 앞에 있지 않고 그 좌측 약 30m 지점에 별도로 있어 비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 이 석탑이 879년(헌강왕 5) 승려 도선(道詵)이 청곡사를 창건할 당시 건립한 탑인지는 의문이지만, 현재 청곡사에 남아 있는 유물 중에서는 가장 시대가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청곡사영산회상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9호



진주청곡사영산회상도 晋州靑谷寺靈山會上圖
1734년 중수, 삼베, 388.5×328.2, 1폭, 청곡사불교문화박물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9호
청곡사 대웅전의 후불탱화로 제작된 이 영산회상도는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지옥을 다스리는 시왕상이 그려진 대작이다. 비단 바탕에 화려하게 채색된 이 그림은 1750년(영조 26) 제작된 것으로 내용이나 규모면에서 보기 드문 불화이다. 화원 명열(明悅) 비구가 주상삼전하의 만세를 위해 발원 제작했으며, 이 공덕으로 인해 모든 중생이 불도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2000년 1월 3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9호로 지정되었다.
석가불좌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4대 보살과 10대 제자, 분신불, 사천왕, 팔부신중, 제석, 범천, 용왕, 용녀, 청문중(聽聞衆) 등으로 구성된 군도식 배치구도이다. 키형 광배를 지닌 석가모니불은 수미단 위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는데, 항마촉지인을 한 손 모양과 균형 잡힌 신체가 당당하면서도 위엄 있게 보인다. 석가불 좌우에 보살과 제자를 배치하고 팔부중과 분신불은 석가불 상단에 좌우로 배치하고 하단 좌우에 사천왕을 배치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어 한정된 공간에 질서정연하게 좌우대칭으로 배열되어 있다. 키형 광배 테두리는 붉은 화염으로 표현되며, 광배 내부는 현란한 색채의 광선문과 화려한 꽃무늬들로 장식되어 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여의와 연꽃을 들었으며 합장한 두 보살의 상반신만 나타나 있다. 백발비구의 모습인 가섭과 젊은 아난존자는 특히 석가불 가까이에 배치되어 있다. 팔부중은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데, 용은 합장한 인물이 머리에 용의 탈을 쓴 모습으로 묘사된다. 인왕과 유사한 얼굴 표정과 나신에 긴 천의 자락이 어깨 위로 둥글게 돌려져 있다. 석가의 형상을 한 분신불은 석가설법을 증명하기 위해 나타나며, 범천과 제석천은 왕의 모습이나 화관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채색에서는 빛이 나는 듯한 청색이 아름다우며, 녹색과 적색이 화사하고, 그 외에 황색과 흰색, 검은색이 사용되었다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문화재관리국, 1998)

청곡사괘불함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1호



청곡사괘불함 晋州靑谷寺掛佛函
1722년, 나무, 32.5×675.8×33.5, 1점, 청곡사불교문화박물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1호
청곡사 괘불을 보관하기 위하여 1722년 괘불과 함께 조성되었다.평소 괘불함에는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을 넣어 보관하다가 괘불재를 올리는 등 필요할 때 괘불탱을 꺼내어 사용한다. 잠시 통도사의 성보박물관에 위탁보관하였으나 2008년 5월 12일 청곡사 내 불교문화박물관이 완성되어 현재는 청곡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괘불함은 두꺼운 목판을 이용해 튼튼하게 제작하였는데, 각 모서리마다 금속장식을 붙이고 옮기기 쉽도록 직사각형의 몸체에 맞는 철제고리를 달아 두었다. 3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보아도 나무의 틀어짐이 없도록 훌륭하게 만들어낸 장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괘불의 화기에는 장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괘불 화기에는 길이 6m가 넘는 거대한 괘불함을 만든 장인이 ‘서선발(徐先發)’이란 사람이며, 당시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양공(木良工)’으로 불렀음이 기재되어 있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