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귀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부대중이 다함께하는 제12교구 해인사 말사. 진주 월아산 청곡사

성보 박물관

국보· 보물

국보 302호 괘불탱화


영상회상 괘불탕화(국보 302호)는 금어(金魚) 의겸스님에 의하여 조선조 경종 2년(1722)에 높이 10m 폭 6m 크기로 장대하게 조성되었다.
금어 의겸은 조선조 18세기의 불교회화에 있어서 의겸류파를 형성할 정도로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사(畵師)이다. 주불인 석가모니에 시문된 화문이나 좌우협시보살의 보관과 화문에서 고려시대의 화려하고 세밀한 화풍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금어 의겸이 제작한 탱화 중에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 불교회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 괘불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6년간 고행수도 끝에 대각을 성취하신 이후로 아함경 12년, 방등경을 8년, 반야경 21년, 법화경, 열반경 8년을 모두 합하면 49년 동안 설법을 하였는데 영산회상도란 이 49년간의 설법중에서 마지막편에 해당하는 법화경을 영취산에서 설법 하신것을 탱화로 그린 것이다.
괘불을 살펴보면 중앙의 부처님은 석가여래 부처님으로 전체적인 모습은 꽃으로 이루어진 화려하고 섬세한 옷을 걸치시고 원만 구족한 상을 나투시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새롭게 갖도록 조성하였다.
괘불의 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 백의관음보살 바른 편으로 대세지보살이 자리하고 있으며 바로 아래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부처님이 계시며, 석가여래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제자상이 배치되어 있고, 관을 쓰고 있는 좌우 협시보살은 좌보처가 문수, 우보처가 보현보살님으로 조성되었다.
이 괘불이 갖고 있는 뜻은,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려고 설법단으로 제자들이 모시고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청동 은상감 향로 (靑銅銀象嵌香爐) 국보 1397호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명복을 빌고 왕생극락을 기원하기 위해 1397년(태조 6)에 제작된 청동은입사청곡사명향완靑銅銀入絲靑谷社銘香垸를 제작 하게 되었다.
향완은 부처님께 향을 피워 공양할 때 쓰는 것으로, 이 향완은 만든 경위와 연대가 분명하고 화려한 은입사 문양이 뛰어난 명품이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
大明洪武三十年丁丑朝鮮國開國 祖聖朝 中宮神德王后本鄕晉陽大都護府裨補禪刹靑谷社普光殿香垸敬造 靑谷重刱比丘尙聰全爲百分常住僧堂所大藏印成常轉法輪廣度衆生 同願駕洛府院君金師幸贊成事金溱 入絲金信剛 靑銅夫金
대명大明 홍무洪武 30년 정축丁丑(태조 6, 1397) 조선국朝鮮國 개국조開國祖 성조聖朝의 중궁中宮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본향本鄕인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 비보선찰裨補禪刹* 청곡사靑谷社** 보광전普光殿 향완香垸을 공경히 만들었다.
청곡사靑谷社를 중창한 비구比丘 상총尙聰***이 온전히 온갖 일을 분별하여 승려들이 항상 거주하는 승당僧堂에 (향완을) 성대하게 간직하게 하였으니, 언제나 법륜法輪을 굴리어 중생衆生을 널리 구제할 것이다.
"동원同願(함께 발원한 사람) 가락부원군駕洛府院君 김사행金師幸****
문하시중찬성사門下侍中贊成事 김주金溱
입사入絲 김신강金信剛 청동靑銅 부금夫金"
비보선찰裨補禪刹 나라의 부족한 기운을 북돋우고 보완해 주는 사찰
청곡사靑谷社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는 절 이름에 寺를 社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사찰에 결사結社 조직이 있음에서 비롯되었다.
비구比丘 상총尙聰 보우普愚의 제자이며, 신덕왕후가 승하한 뒤 왕후의 능인 정릉 貞陵의 원찰願刹인 흥천사興天寺를 조성할 때 감독을 맡았다.
김사행金師幸 환관으로 태조의 총애를 받아 한양 왕궁과 성곽, 능묘 등의 공사를 지휘하였다. 김주金溱 역시 한양 새 수도 경영에 참여하였으며, 흥천사 공사를 감독하였다.
이 향완이 진주 청곡사에 모셔지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신덕왕후의 본향은 곡산강씨谷山康氏임에도 명문의 내용대로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잘못 알고 만든 것이고, 그 연유로 진주 청곡사에 모셔지게 된 것이다. 이 오류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발견된다. 태조실록에서는 분명히 곡산강씨谷山康氏로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향완과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진주는 신덕왕후 어머니의 본향이다
(국립중앙 박물관 소장/ 진주국립박물관)